커크 커코리언은 1917년 캘리포니아 프레스노에서 아르메니아계 유대인 가정에 태어났다.
중학교 2학년(8학년)인 16살에 학교를 중퇴한 그는 태평양 아마추어복싱 웰터급
챔피언을 차지할 만큼 권투선수로서 자질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1939년 어느 날 한 사건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커코리언은 1939년 22살 때 시간 당 45센트를 받고 한 사람의 보일러를 설치해주던 중
그로부터 캘리포니아 해안을 둘러보는 비행을 제안 받았다.
그리고 커코리언은 비행기를 처음 타보고 완전히 비행에 매료되었다.
그 후 커코리언은 인근 비행학교 교관의 집에서 소를 관리하고 우유를 채집해주는 대가로
무료 비행레슨을 받기로 한다.
커코리언은 6개월 조종사 교육을 받고 조종사 면허를 취득하고
처음에는 전투기 조종사 교관으로 취직하게 된다.
2차 대전 당시 영국 공군으로 참전하여 제대한 후 1944년 그는 라스베가스로
처음 상업 비행하게 된다.
27살 때였다.
그 뒤 조종사로서 비행가들을 운송하는 역할을 하며 꽤 돈을 모으게 된다.
1946년에 로스앤젤레스에서 라스베가스로 가는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기 위해
6만 달러를 주고 비행기를 구입하여 ‘트랜스인터내셔널항공’ 이라는 자기 회사를 설립한다.
전쟁 전후로 시그램 패밀리로부터 융자를 얻어 라스베가스에 중고비행기, 비행연료,
퇴역한 폭격기 등에 투자하여 꽤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는 항공사 사업을 하면서 중고 비행기 사업으로 종잣돈을 마련한 커코리언은
하루에 5만~8만 달러를 잃는 등 도박 중독에 빠질만큼 도박을 좋아했다.
그러면서 그는 라스베가스의 미래에 대해 확신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건 눈여겨 봐두었던 라스베가스 스트립 거리에 있는 토지 80에이커를
1962년에 96만 달러에 매입한다.
당시로서는 큰 돈이었다.
이로써 그는 라스베가스의 거물로 떠올랐다.
스트립 거리는 오늘날 라스베가스에서 가장 많은 대형 카지노호텔이 모여 있는 거리이다.
라스베가스의 최대 복합단지인 커코리언의 시티센터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는 1967년에 첫 작품으로 벅시 시겔이 건설했던 ‘플라밍고’를 1250만 달러에 사들여
2백만 달러를 들여 개조한 후 카지노 사업에 진출하였다.
이 호텔의 테마는 캐리비안(Caribbean)이다.
호텔 테마와 어울리는 15에이커의 아름다운 수영장을 3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10여개의 식당이 있다.
이 호텔은 외관이 이쁘고 호텔의 명물인 호텔 중앙에 위치한 정원에서
자카스펭귄, 홍학, 비단잉어와 폭포, 잔디광장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지금도 사진촬영 장소로 많은 사람이 찾는다.
이후 이를 본 따 테마가 있는 호텔들이 등장한다.
스트립 거리의 토지 일부를 1968년에 유명한 도박사 제이 사노에게
9백만 달러에 매각하여 오늘날 라스베가스의 테마가 있는 호텔의 원조격인
시저스 팰리스가 들어서게 된다.
2500만 달러를 들여 지은 시저스 팰리스의 모토는
‘이곳에 오는 모든 사람들은 시저 황제가 된다’ 였다.
사람들은 이 모토에 본능적으로 끌릴 수 밖에 없었다.
개장 첫 주부터 시저스 팰리스는 420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도박 기록을 세우며
라스베이거스 기록들을 갈아치운다.
이벤트 행사도 많았다.
비운의 복서 김득구 선수가 올랐던 곳이 시저스 팰리스 특설링이었다.
고대 고마를 그대로 재현한 듯한 ‘시저스 팰리스’는 로마 제국의 조각 예술품의 집합소로
마치 박물관을 연상시키고 천장에 그려진 하늘그림을 보면 누구나 탄성을 지른다.
매시간 말을 거는 분수대 조각과 로마 복장을 한 안내원들도 흥미롭다.
뒤이어 그는 카지노호텔 ‘서커스 서커스’를 개장했다.
그는 라스베이거스 호텔들에 테마파크를 도입한 선구자였다.